*'이미 일어난 사고의 뒤처리에나 집중하자.' 그게 외상외과 의사가 할 일이다.
*그저 의사는 편견을 배제한 채 눈앞에 있는 환자에게 모든 역량을 쏟을 뿐이다. 다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가족과 함께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
*궁금해할 찰나도 없이 몰려드는 환자를 치료하며 외상센터의 일상은 또다시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외상외과 의사는 항상 기계와 사람의 경계에서 줄을 탄다. 신체의 치유에 집중하다 보면 정신적 치유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아들을 떠나보내야 할지 모르는 어머니의 심정까지 내가 온전히 헤아릴 순 없었다. 나 따위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커다란 아픔일 터였다.
*환자를 살리는 데 의사의 감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로는 눈물을 집어삼킬 줄도 알게 됐다. 그의 눈에 지금의 나는 어쩌면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비칠지도 모른다.
*배가 찢기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눈짓을 1초도 놓치지 않았다. 성대와 입을 통해 새어 나오는 공기 소리나 눈물샘을 타고 흘러나오는 뜨거운 액체만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끈은 아니거늘. 할아버지의 인생이 할머니의 인생이고 할머니의 인생이 할아버지의 인생이었음을.
*나는 별이 된 아이들만을 위한 천국이 있다고 믿는다. 그곳은 인공호흡기도 고통도 눈물도 없는 따뜻한 곳이어야만 한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다 보면 그토록 기다리던 엄마, 아빠와 다시 만나 이별없이 사는 날도 오겠지.
*먼 훗날 그곳으로 초대받아 그들과 조우했을 때 그동안 고생했노라고 작은 위로와 다독임 한 조각을 돌려받는 그날을 상상하면서.
의사라는 직업은 갖기도 어렵지만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렵다. 주변에 30대 중반인데도 아직 정식 의사가 되지 못한 친구들이 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갖기가 이렇게 힘든 이유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의사가 쓴 책을 읽어도 내용은 비슷하다. 힘들고 우울하고 어지럽고 괴롭다. 그 가운데서도 사람을 살리겠다고 밤낮없이 일하는 게 의사다. 영화 '래더 49'에는 죽은 소방관을 뒤로하고 출동길에 오르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나온다. 의사도 죽은 환자를 뒤로 하고 새로운 환자를 맞아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돌고 도는 세상 속 끝에는 늘 의사가 있다. 욕먹어야 마땅한 의사도 많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수렁에서 건져 올리는 의사도 많다. 그런 의사 및 의료진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쇼펜하우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0) | 2025.03.30 |
---|---|
남혁우 《달리기의 모든 것》 (1) | 2025.03.23 |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 (0) | 2025.02.15 |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0) | 2025.02.08 |
법정 《진짜 나를 찾아라》 (1) | 2025.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