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를 쓰러 동네로 온 첫날. 1시간 정도 미리 도착해 기다리려는데 근처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하나도 없었다. 전에 살던 이태원은 골목마다 카페가 몇 개씩 있었는데 아파트 단지가 이렇게 넓고 유동 인구가 그냥 봐도 많은데 스타벅스 하나 없다는 게 놀라웠다. 찾고 찾아 근처 초등학교 주변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남자 사장님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다가 계약서를 쓰러 갔다. 몇 년이 흐른 지금 그 카페 입구에는 영업을 종료한다며 그동안 사랑해 줘서 고맙다는 쪽지가 붙어 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카페 사장님은 업종을 변경해 떡볶이를 팔았다. 조금 있자 온 가족이 투입돼 사장님은 떡볶이를 만들고 아내와 사장님의 엄마는 꼬마김밥을 말았다. 초반에는 지나가던 초등학생들의 시선을 끌어 장사가 어느 정도 됐다.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카페 옆에 있는 편의점을 더 많이 찾았다. 가게 안을 들여다볼 때마다 각자 열심히 맡은 임무를 수행 중이었으나 찾아오는 손님은 지나가던 할머니들 뿐이었다. 결국 폐업을 결정한 카페를 보며 요즘 애들은 떡볶이도 안 사 먹나 생각했다. 어렸을 적 학교 끝나고 사 먹는 컵떡볶이와 달고나는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매연 내뿜는 트럭에서 팔던 떡꼬치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아직도 떡꼬치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거리에 서서 분식 먹는 아이들은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성북동에 살 적 퇴근길에 지나던 편의점은 늘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까 생각했는데 요즘 아이들이 다음 학원으로 이동하기 전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컵떡볶이 사 먹고 달고나 기다리던 그 시절에는 집에 들어가 만화영화를 보다가 피아노 학원 정도 가는 게 전부였다. TV를 보니 요새는 학원을 10개 가까이 다니는 초등학생도 있다고 한다. 20년 전과 지금은 어쩌다 달라졌을까. 다른 신문 기사를 보니 요즘 초등학생들은 부모님께 몽클레르, 톰브라운 옷을 사달라고 조른다 한다. 서른이 넘어서야 엄두를 냈던 옷들을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 때는, 옛날에는 외치면 꼰대다. 20년 전엔 그게 낭만이었고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낭만은 있을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는데 그건 절대적으로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이가 들고 하는 일이 하기 싫어지면 어디 가서 떡꼬치나 팔고 싶다. 떡을 바삭하게 튀겨 달지만 매콤한 양념을 앞뒤로 바른 뒤 손잡는 부분에 냅킨 한 장 덧대어 잘 내어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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