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과 부모님이 계신 고향 충북 청주시 복대동 사이의 거리는 143km다. 이 길을 20대 때부터 수도 없이 오갔다. 고속버스를 타고 갔고 기차를 타고 갔다. 지금은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20대 때는 가족이 그리워 이 길을 오갔다. 취업한 뒤로는 효도하러 다녔다. 30세 이후부터는 길 위에 어떤 의무감을 깔았다. 143km 사이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부모님께 새 옷을 사드리러 갔고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러 갔다. 취업했다며 취업턱을 내러 갔고 할머니가 수술을 앞둬 병문안을 갔다. 143km 위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여러 감정이 깔렸다. 길 위에는 설렘이 있었고 어쩌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서울에 자리 잡았다는 허영심이 있었다. 이런 감정은 결혼을 하고 전부 씻겨 나갔다. 더 이상 길 위에 혼자만의 감정을 쌓을 수 없다. 이번에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처음 보는 사람은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밥은 몇 끼를 같이 먹어야 지 아무도 걱정하라고 한 적 없는데 걱정한다. 결혼은 둘이서만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실감한다. 처음도 아닌데 아직 이런 걱정을 하는 걸 보면 당분간은 새로운 유니버스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태어나면서부터 옭아맨 가족이란 운명이 몇 배로 커진 기분이다. 책임감이 더 커졌고 가족 내 새로운 위치로 이동했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이런 생각으로 143km를 달려 만난 부모님과는 늘 그렇듯 쓸데없는 이야기만 나눴다. 늘 그랬다. 장남이라며 집안의 대소사를 이야기하고 결정이 필요한 일들을 얘기할 때마다 자리를 뜨거나 말을 돌렸다. 내 뜻대로 살 거라며 다 어련히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부모님도 더 이상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신다. 젊었을 적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다니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우리가 약속한 모습이 지금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143km를 되돌아오며 이 관계가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이탈도 없이 영원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같이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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