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하프마라톤

black bird 2025. 5. 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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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주력 대회를 서울하프마라톤으로 정했다. 광화문에서 출발해 충정로를 지나 공덕, 마포대교, 여의도, 양화대교, 합정, 망원, 마포구청을 거쳐 평화의 공원에서 피니시 하는 코스다. 피니시 지점이 집 앞이란 점과 평소에 한번 뛰어보고 싶었던 서울 도심을 마음껏 뛸 수 있는 코스라 마음을 뺏겼다. 지난 3월 동아마라톤에 출전했을 때 올림픽로를 뛰는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유로움에 사로잡혔다. 좋은 코스는 마라톤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인스턴트 죽으로 배를 채우고 광화문으로 갔다. 러너들 사이에 이름난 대회라 그런지 다른 대회 때와 달리 지하철이 북적였다. 짐을 맡기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처음 대회를 나갔을 때는 그렇게 떨리더니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출발 20분 전부터는 아예 앉아서 쉬었다. 대회를 나갈 때마다 하나씩은 배우는데 너무 큰 부담은 긴장으로 이어져 레이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동아마라톤 때 레이스 도중 화장실을 갔던 것이 대표적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선에 서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10km 대회와 달리 주변 러너들의 대화에서 불안함과 긴장이 느껴졌다. 중간에 퍼지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돌아가기 위해 카드를 챙겼다는 둥 15km만 뛰는 게 목표라는 둥 개별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부상을 우려해 카본화를 신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하프 코스라 그런지 10km 대회처럼 팽하고 튀어나가는 러너는 없었다. 우리는 21.0975km를 무사히 함께 뛰어야 하는 공동체다. 러너들의 흐름대로 서울시청까지 달렸다. 충정로를 지나자 마포대교까지 쭉 내리막이다. 발목과 무릎의 안녕은 접어두고 신나게 내달렸다. 최근 몇 번의 대회에서 작은 걱정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러닝 시작 초반에 부상으로 꽤 오래 고생했다. 안 하던 운동을 하려니 몸 이곳저곳이 아팠다. 어느 순간부터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 깊게 자리잡아 더 열심히 뛸 수 있음에도 스스로 제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레이스가 끝나고 나면 항상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에 갇혔다. 오늘만큼은 그런 걱정을 내려놓고 달리기로 했다. 신나게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한 바퀴 돌자 10km가 지났다. 10km 주자들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갔고 하프 주자들은 온 만큼만 더 가자며 에너지젤을 뜯었다. 이후 DJ가 있던 여의도 지하차도를 지나 양화대교를 건너 합정-망원-마포구청을 차례로 지났다. 저 멀리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나타났고 마지막 반환점을 돌아 피니시 라인을 향해 달려가는 러너들이 보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19km 지점을 지나 결승선이 나타나자 몸에 남은 모든 힘을 다해 전력 질주했다. 그렇게 약 1시간 40여 분간의 하프 마라톤이 끝났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는 동안 대회를 위해 연습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작년 초 처음 시작해 혼자 묵묵히 트랙을 뛰던 시절부터 크루에 들어가 한강, 남산에서 조깅을 하고 인터벌, 지속주 등 포인트 훈련을 하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일리지를 높이기 위해 매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10km씩 뛰기도 했다. 비록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한 기록을 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이룬 성과 중 손에 꼽히는 기록이다. 러닝을 시작한 이후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러닝 이야기만 했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마라톤은 수많은 사람이 함께 출발해 같은 길을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달리는 종목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대로 특정 지점에서 누군가에게 뒤처지고 누군가를 앞선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 누구도 마라톤에서 뒤처졌다고 비웃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전부 다른 방식으로 달렸지만 목적지는 같았던 사람들이 결승선을 넘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서로를 다독인다. 주로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낭만이다. 러닝을 시작한 지 1년 4개월 만에 하프 코스를 완주했다. 풀 코스도 가능성이 보인다. 목표가 있기에 쉬지 않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모든 러너의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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