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서울마라톤

black bird 2025. 4. 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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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계속 달렸다. 컨디션이 매우 안 좋거나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계속 달렸다. 런 크루와 함께 달렸고 혼자 남산과 한강을 달렸다. 해를 넘기며 거리를 늘렸다. 지난해보다 나은 내가 되고 싶었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1년 사이 훌쩍 성장했다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매일 밤 마라톤 영상을 보며 훈련 계획을 세웠고 사람들을 만나면 달리기 얘기만 했다. 그러다 지난달 드디어 대회가 시작됐다. 비록 풀코스 접수에서 튕겨 10km 대회에 출전했지만 그동안 한파에 맞서 싸우며 힘겹게 달렸기에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유튜브에서 본 선수들의 루틴을 따라 하며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천으로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으나 대회에 대한 예의로 싱글렛과 레깅스를 입었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뛰기 참 적당한 기온이라고 생각했다. 큰 대회는 오랜만이라 긴장한 나머지 몸도 푸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얼떨결에 레이스를 시작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연습 때보다 30초 정도 빠른 페이스로 시작했음에도 힘들지 않았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그대로 밀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4km쯤 달렸을 때 발목이 굳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날을 위해 연습해 온 만큼 잘 극복했다. 하지만 1km를 더 달린 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대회 시작 전 꽤 오래 추위를 참아 불안했는데 역시나 화장실 이슈가 발생했다. 어떻게 준비한 대회인데 참고 달려보자 생각했으나 결국 6km 지점에서 주유소 화장실에 들렀다. 용변을 보고 다시 출발하며 시계를 보니 지금부터 최고 페이스로 달려도 개인 최고 기록을 넘기 힘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평소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자란 마음속 욕망을 다스리지 못했다. 달리기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남에게 보이는 부분에만 집착했다. 신체는 단련했으나 마음은 전혀 단련하지 못했다. 결국 의욕이 사라진 상태로 레이스를 완주했다. 끝나고 기록을 보니 개인 최고 기록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 최선을 다해 뛰었으면 갱신이 가능한 정도였다. 승패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스포츠 정신을 저버렸기에 아쉬워할 수도 없었다. 다시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자 시계가 오전 10시30분을 가리켰다. 조금 전까지 뛰었던 게 봄날의 꿈처럼 느껴졌다. 더 달릴 수 있었고 더 버틸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달린 것 같지도 않았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마음이 나약해지고 말았다. 달리기를 하며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이번 달 말 올해 상반기 마지막 대회에 나간다. 당연히 훈련도 열심히 하겠으나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는 훈련도 할 계획이다. 달리기를 해보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도 훈련을 통해 만들 수 있다. 아무래도 이번 대회가 올해 상반기 가장 큰 인사이트가 될 것 같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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